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앤드루 카네기 (문단 편집) == 기부 및 평화운동 == >'''"통장에 많은 돈을 남기고 죽는 사람처럼 치욕적인 인생은 없다."''' >'''"부자로 죽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 - 그의 좌우명 카네기가 이런저런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회적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가 특히 말년으로 갈수록 이미지 메이킹 차원을 넘어 스스로 부의 사회환원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적극적인 기부활동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카네기의 독과점에 대해 미국 정부도 심각성을 느끼면서 법적, 정치적으로 제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카네기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위해 기부활동을 대폭 늘였다는 것이다. 카네기의 외동딸조차 자기 아버지의 전기를 쓰려는 작가에게 "아버지에 대해 있는 그대로 써달라. 나는 아버지가 산타클로스인 척 하는 것이 지겨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식도 딸 하나뿐이던 카네기는 딱히 돈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던지[* 생전에 카네기는 가족 상속과 사후 기부에 반대했다. 첫째는 후손에게 오히려 짐이 될 수 있으며, 둘째는 고인의 뜻대로 돈이 쓰일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 결국 저승에 돈 싸들고 갈 수도 없는데 살아있을 때 사회 환원하는 게 최고라는 것. 이때 나온 게 상기된 부자로 죽는 건 망신이라는 표현이다.] 1901년 회사를 매각한 뒤 J. P. 모건에 철강회사를 매각한 대금으로 [[재단]]을 설립했고, 본격적으로 사회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교육]] 분야에 기여한 바가 큰데, 1902년부터 시작된 카네기의 [[도서관]] 건립 계획을 통해 미국 전역에 2500여 개의 공공 도서관을 건립했고[* 상기했듯 어린 시절 자신도 무료 도서관의 혜택을 봤기에 도서관 사업에 열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카네기는 정규교육을 4년밖에 못 받았고, 그 외의 교육은 도서관에서 독학으로 해결해야 했다.], 모두 사회에 헌납했다. 사회적 소수자 문제에도 나름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후 글로벌 명문 대학교가 되는 [[피츠버그]]의 [[카네기 멜런 대학교]]도 카네기의 기부금으로 설립된 학교이다. 사업가로 활동할 당시엔 실질적인 노동인권 문제엔 큰 관심이 없던 잔머리 사업가라는 말도 듣던 카네기가 이때 기부하면서 내건 구호가 "노동자 계층 자녀들을 위한 직업훈련학교"였던 걸 보면 묘하다.[* 실제로 카네기의 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카네기의 기부활동에 대해 위선적이라며 분노했다. 도서관 건립에 기부한 돈은 공장 노동자들의 식사대금을 줄여가며 조성한 돈이며, 정작 노동자들은 장시간 근무로 피곤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여유가 없으니, 기부할 돈이 있으면 노동자의 급여와 복지에나 신경쓰라고 비판했다.] 미국 내에서 그가 기부한 도서관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1920년대에는 미국 도서관의 절반이 그의 기부로 지어질 정도였으니. 또한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개가식(일반적인 도서관 이용방법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반대는 폐가식으로, 도서카드를 보고 신청하면 사서가 서고에서 책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도서관을 운영하였다. 도서관을 공공재의 시선으로 보았다는 특징 또한 있다. 카네기가 [[카네기 홀]],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각종 대학 등에 기부한 총 액수는 3억 달러 이상이었다고 한다. 당시 아시아에서 발돋움하던 신흥국 일본의 1년 국가 예산이 1억 3천만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 그가 사망했을 때 남은 그의 재산은 당시 돈으로 3천만 달러 정도였다고 한다. 실제 전재산 중 대략 90%를 기부한 셈. 1901년에는 카네기 스틸[* 매각 후 US 스틸이 되었다.]을 [[J. P. 모건]]에 매각하고 자선사업을 하며 노후를 보냈다. 그런데 이 자선사업 분야의 일부가 현재 미국 은행 자산 순위 20위권에 들어가는 TIAA 은행이 됐다. 포트폴리오가 굉장히 보수적이라 1910년에 설립됐는데도 100년이 넘게 모든 경제위기들을 극복하며 살아남았다. [[평화주의]]와 [[반제국주의]] 사상이 강해서 [[윌리엄 매킨리]] 당시 대통령과 독대해서 [[미서전쟁|스페인과 하려는 전쟁]]을 막기도 했다. 이때 한 말이 "전쟁이 벌어지면 미국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저겠지만, 그래도 전쟁은 막아야 합니다."라는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미국의 외교안보 싱크탱크 가운데 온건, 진보 성향이 강한 '카네기 국제평화기금'(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의 설립에도 기여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세워진 [[국제사법재판소]]의 건물(통칭 '평화궁')도 그가 기탁한 돈으로 지어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